손풀이 겸 기타등등

2009-03-18

주마등은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행복했던 기억, 보고싶은 얼굴, 그런 사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든 생각은 하나는 아니었다. 뭐지. 아, 죽는구나. 차가 오나? 지금 도는 거지? 아, 중앙선 넘었네. 안오는구나. 살았나? 죽는구나. 부딪힌다. 죽는구나. 안 죽었네? 대충 이 정도가, 하나의 문장이 되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옮기자면 아, 살죽뭐딪나부차죽안? 정도가 될 거 같다. 다음 순간에,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연속이라고 생각되는 시간의 편린에 손을 움직여 보았다. 움직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일단 차 문이 찌그러지긴 했지만, 어쨌든 내 몸에 닿을 만큼은 아니었고, 안전벨트라는 게 그렇게 쓸모 없는 물건은 아닐 테고, 창문 유리는 적어도 바깥쪽으로 대부분 날아간 것 같으니까. 누군가의 구급차를 부르라는 말에 119를 눌렀다. 상대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뭐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침착하게. “차 사고가 나서요. 여기 위치가… 여기가 어디죠?” 전화가 끊어졌다. 멍하니 전화기를 쳐다보니, 목소리 대신에 문자가 답해주었다. 고객님의 위치정보를 소방방재청에 송신했댄다. 정신빠진 인간의 말보다는 GPS가 정확하겠지. 옳은 선택이다. 피는 보이지 않는다. 왼손 약지에 점처럼 무언가가 박혀 있다. 흔들어 털어내고, 손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올 수 있겠어요?” 아, 구급차구나. 오른쪽 문을 열어본다. 역시. 정신이 나간 건 아니었어. 문이 찌그러졌는데 열릴 리가 없지. 허리를 굽히고 이미 사람이 빠져나간 운전석을 통과한다. 허리 근처를 누가 칼로 쑤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고 보자. 목을 비틀어버릴테다. 그 따위 생각을 하며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바퀴가 달린 알류미늄 합금 구조물에 눕는다. 차갑다. 경찰이 보인다. 견인차 세 대도 보인다. 아, 이게 교통사고구나. 문자가 한 통 왔다. 로어세크 킹왕짱 나는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이롱 환자의 보고서 Ba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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