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사막

2010-10-15

오래된 책에서 시냇물은 졸졸졸 하고 흐른다는 말을 보았다. 하지만 존은 어떻게 생각하면 시냇물 소리를 졸졸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계속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사는 한. 주룩절걱주룩절걱. 굳이 소리로 옮기자면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는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시냇물은 검붉은 색이고, 가끔 묘한 은색이나 녹색 반점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했다. 물 건너편에 이 미터 높이로 빼곡이 자라 시야를 막은 것은 건드리면 회초리처럼 후려친다고 해서 회초리풀이라고 부른다. 이런 물을 마시고도 자랄 수 있는 풀은 그 정도였다. 물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바람에 매캐하고 눅눅한 냄새가 실려왔다. 피 맛 비슷한 쇳가루 냄새, 존은 반점 같은 흉터가 아직 선명한 팔을 문지르며 시냇물을 쳐다보았다. 시냇물에 다가가듯 조잡한 깃발 열 대여섯개가 줄지어 있었다. 철근에 더러운 천을 매단 것일 뿐이지만, 용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는데, 천에는 모두 커다랗게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시냇물에 가까이 있는 깃발에 커다랗게 적힌 이름은 존. 그게 존의 이름이었다. 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 딱 하며 회초리풀이 허공을 후려쳤다. 그 서슬에 주위에 있던 회초리풀들이 서로를 후려치는 소리가 파문처럼 퍼져나갔다. 존은 깜작 놀라 저도 모르게 물러섰다. 하지만 존을 놀라게 한 것은 개구리였다. 고작 삼십 센티가 조금 넘는 작은 개구리는 흐르는 물처럼 검붉은 색이었다. 존은 작게 휴우. 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웅얼거린다. “개구리 주제에….” 아까의 득의만만만한 웃음은 사라지고, 겁먹은 얼굴이 되어 주위를 살폈다. 개구리는 한번 개굴 하고 울더니 시냇물에 뛰어들었다. 그 서슬에 물방울 몇 개가 튀어 깃발에 묻었다. 순식간에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깃발에 구멍이 뚫렸다. 존은 저도 모르게 팔을 움켜잡으며 흉터를 쳐다보았다. 화상 흉터는 제법 커서 존의 손바닥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존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차근차근 주위를 살폈다. 이제 회초리풀 파문도 한 차례 지나가서, 움직이는 것은 시냇물과, 물에 뛰어든 개구리뿐이었다. 개구리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물이 거셀 시기라 제자리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존은 숨을 크게 들이키고 옆에 세워놓은 스쿠터 짐칸을 열었다. 알렉산드로스와 황금 티라노사우르스라고 제목이 적힌 책을 들어내고, 알렉산드로스와 프테라노돈 비행사라고 적힌 책도 들어내고, 알렉산드로스와 트리세라톱스 마흔 마리라는 책까지 들어낸 다음 꺼낸 것은 존의 팔 만큼이나 큼지막한 소세지였다. 특등급 돼지의 살이다. 포장 너머로 달콤한 돼지기름 냄새가 배어나왔다. 존은 입맛을 다셨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좋아.” 존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하면서 입술을 굳게 다물고 주위를 살폈다. 어제도, 그제도 이 정도 시간에 여기서 보았다. 그래서 머리를 싸매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준비를 해 왔다. 존은 한 손에 소세지를 들고서 껍질을 벗겼다. 차근차근 계획을 되짚어 볼 요량이었다. 그 때, 또 물에 뭔가가 뛰어드는 소리가 났다. 퐁. 또 개구리다. 존은 아까만큼이나 깜짝 놀라서 소세지를 떨어트릴 뻔 했지만, 짜증스런 얼굴을 지어보이며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돌이라도 집어던져 줄 생각이었다. 킁. 하지만 이번에는 개구리가 아니었다. 공룡, 존과 비슷한 눈높이지만 눈 위에 난 붉은 볏이 뿔처럼 솟아 키가 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온 몸을 감싸는 푸른 깃털은 팔처럼 길다란 앞발에서 더욱 풍성해져 마치 날개처럼 보인다. 꼬리 끝까지 이어진 깃털은 날이 서 날카롭고, 존의 주먹보다 커다란 가운데 발톱이 바닥을 찍어 누른다. 유타랍토르. 존은 입을 헤벌리고 멍하니 섰다. 다른 랍토르들은 그냥 죽은 짐승 시체나 알을 훔쳐먹고, 몽둥이를 한번 휘두르기만 해도 도망가는 겁쟁이들이지만 유타랍토르는 다르다. 트리세라톱스도 혼자서 사냥한다고 하는 진짜 사냥꾼이다. 그런 유타랍토르가 존의 눈앞, 바로 시냇물 건너에 나타났다. 유타랍토르는 앞발을 손처럼 써서 아직도 제자리에서 버둥대는 개구리를 건저 올렸다. 입이 벌어지고, 삼십 센티는 될 개구리가 통째로 구겨져 들어간다. 으적거리며 개구리를 씹어삼킨 유타랍토르의 이마에서 은색 원반이 빛난다. 주위의 깃털하고도, 볏하고도, 배 아랫부분에 드러난 비늘과도 다른 명백히 이질적인 물건이다. “카쟈라웜.” 존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놀라 침을 꿀꺽 삼킨다. 잘 알고 있다. 카자라웜이 뭔지. 저기다 손을 대면 날카로운 발톱, 촘촘한 이빨, 힘센 꼬리가 내 것이 된다. 존은 필사적으로 계획을 되새겼다. 소세지를 내밀고, 유타랍토르가 그걸 먹는 사이에, 카쟈라웜에 이마를 갖다 댄다. 톰 아저씨네 잭, 눈높이가 존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위에 있고 제각각 회전하는 뿔로 커다란 바위도 부숴버리는 그 트리세라톱스도 그렇게 길들였다고 들었다. 완벽한 계획이다. 소세지는 천 에덴이나 하는 특등품이다. 유타랍토르가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존은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킁. 그런 비슷한 소리를 내며 갑자기 유타랍토르가 시냇물을 뛰어넘었다. 존은 놀라 소세지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유타랍토르는 다시 콧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존은 바닥에 떨어진 소세지를 주워 보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돌릴 수 없었다. 유타랍토르는 천천히 존에게 다가왔다. 소세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두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킁. 하는 소리를 냈다. 킁. 킁. 킁. 여섯 걸음을 걷자 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유타랍토르가 내쉬는 숨이 얼굴에 와 닿았다. 피와 고기, 쇳가루, 방금 먹어치운 개구리 냄새. 유타랍토르는 킁킁거리며 존의 냄새를 맡았다. 존은 알고 있었다. 코앞이다. 팔을 뻗어도 되고, 아예 은색 카쟈라웜에다 이마를 가져다 댈 수도 있는 거리였다. 그러면 카쟈라웜은 존의 뇌파에 동조하고, 그 상태가 일 초만 계속되어도 존의 뇌파에만 맞도록 구조가 바뀌어버린다. 그러면 카쟈라웜에 조종되는 유타랍토르는 완전히 존의 것이 된다. 몇 번이고 백과사전을 보고, 알렉산드로스라는 카쟈라가 주인공인 소설을 보고, 몇 백번이고 상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유타랍토르는 존의 냄새를 맡으며 계속 존을 쳐다보았다. 존도 유타랍토르의 냄새를 맡으며 계속 유타랍토르를 쳐다보았다. 움직이려고 아무리 해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웠다. 타닥타닥. 그 때 회초리풀이 바닥을 쳤다. 유타랍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얼굴을 찌푸렸다. 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유타랍토르는 그 표정 그대로 존에게서 멀어졌다. 뒷걸음질을 몇 번 하더니, 올 때처럼 시냇물을 뛰어넘었다. 허공을 마구 때려대는 회초리풀 사이로 사라지기 전에, 유타랍토르는 존을 힐끗 돌아보았다. 마치 네까짓 것이.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존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명히 풀에 쓸려 나중에 독이 올라올 테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다. 타닥타닥. 회초리풀이 계속 허공을 때렸다. 무언가 커다란 물건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존은 멍하니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낮은 엔진음이 회초리풀 소리 사이로 들렸다. 동시에 회초리풀이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회초리풀이 서로를 때리며 누웠다 일어났다 했다. 그 사이로 잠깐잠깐 시야가 트이자 시냇물 건너에서 거대한 트레일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트레일러는 시냇물을 따라 달렸다. 회초리 풀이 무성하게 자란 시냇물 저 쪽은 사람들은 잘 접근하지 않았다. 괜히 맨몸으로 다가갔다가 회초리풀에 호되게 얻어맞을 것이고, 차를 탄다고 해도 어지간하게 크지 않은 차는 회초리풀이 움직이는 서슬에 뒤집히거나 망가질 수도 있었는데, 지금 지나가고 있는 트레일러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풀을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 정도 크기라면 새 땅을 찾아다니는 개척자들이나 쓸 물건이었다. 개척자. 존은 그 단어를 생각하는 순간 벌떡 일어나 스쿠터에 올라탔다. 개척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스쿠터로는 시냇물을 건너갈 수 없었다. 건너가려 했다간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리고 녹아버릴 것이다. 트레일러는 얼마 안 가 멈추었다. 존도 따라 멈추고 시냇물 건너를 쳐다보았다. 움직이는 것이 없어지자 회초리풀의 움직임도 멈췄다. 이 미터가 넘는 회초리풀이 완전히 시야를 가려서 트레일러는 잘 보이지 않았다. 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가까운 곳에 민가도 없고 길에서도 한참 벗어난 곳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디플로도쿠스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면 개척자가 길을 잃어서 멈춘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 근처에 쇠은행나무가 있었다. 근방의 나무 중에서는 유일하게 살에 닿아도 독이 오르지 않는 나무였다. 존이 막 기어 올라가자 트레일러에서 남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챙 넓은 카우보이모자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개척자라는 느낌이 확 드는 차림새였다. 남자는 내려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정말 길을 잃은 모양이었다. 존은 소리를 쳐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펄쩍 뛰다시피 해서 뒤로 물러섰다. 존도 놀라 그 쪽을 쳐다보았다. 아까 본 유타랍토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가 품에서 커다란 총까지 꺼내드는 것을 보고 존은 뭐가 있나 해서 유심히 그 쪽을 살폈다. 남자가 보고 놀란 곳에는 빨간 도마뱀이 한 마리 있었다. 존의 팔뚝보다 작아서 지금 있는 곳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선명한 빨간색이 아니었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존은 피식하며 웃었다. 생각보다 남자는 겁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때,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자의 팔이 움찔하는 게 보였을 뿐이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사방에서 대왕잠자리 떼며 작은 익룡, 아케옵테릭스 같은 것들이 날아올랐다. 새빨간 도마뱀은 새빨간 죽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존은 인사를 하려던 손을 어정쩡하게 내렸다. 고작 도마뱀 한 마리에 놀라 총을 쏘다니. 이상한 사람이었다. 길을 가르쳐 주려던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어서 내려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무에서 내려가려는데, 남자가 존을 쳐다보았다. 모자 아래의 얼굴에는 세로로 긴 흉터가 선명했다. 존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왔다. “어이!” 뒤에서 남자의 외침이 들렸다. 존은 허둥지둥 스쿠터에 올라타 엑셀레이터를 당겼다. 아까 들렸던 총소리가 쫒아오는 기분이었다. 존은 냇가가 안 보일 만큼 멀리 가서야 숨을 내쉬었다. 그 흉터, 그 총. 어쩌면 강도나 살인마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름이 끼쳤다. 찝찝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자, 중형 바이크 하나가 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다. 나를 쫒아오는 거야. 존은 확신했다. 그리고는 겁에 질려 엑셀을 당겼다. 마을까지 오는 길은 평소보다 길었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지나가던 옥수수밭이 교회가는 길마냥 길었다. 간신히 옥수수밭을 지나오고, 마을 입구가 보였다. 아직도 그 남자는 존을 쫒아오고 있었다. 존은 육각별 간판이 달린 보안관 사무실로 달려 들어갔다. 스쿠터가 쓰러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쓰러지듯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수상한 사람을 봤어요! 가, 강도 같아요!” “수상한 사람?” 보안관은 놀란 얼굴로 일어섰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병이 그 서슬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존은 긴박한 와중에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깨진 병을 쳐다보았다. 블루 머스킷. 마을에서 생산되는 특산품, 옥수수 위스키였다. 아직 남아 있던 파란 술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보안관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존에게 말했다. “그래 수상한 사람이 어디 있는데.”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민트 여사가 자리를 비우자 마자 이 꼴이다. 민트 여사가 있었다면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존이 바깥을 가리키면서 수상한 남자에 대해서 말하려는데, 열린 문으로 아까의 남자가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보안관은 그 남자를 가리키며 태평하게 술 냄새 풍기는 입을 열어 물었다. “수상한 사람?” 존은 태연자약하게 인사를 하는 남자를 보고는 너무 놀라 말을 더 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보안관님. 헨리 더글러스입니다.” 헨리라는 남자는 존을 무시하고 보안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른쪽 얼굴 절반을 덮은 베인 흉터가 웃는 입처럼 실룩였다. “흠. 더글라스 씨. 그래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보안관은 약간 경계하는 얼굴로 그 손을 맞잡았다. 열린 문틈으로 사이드카가 달린 커다란 여행자용 바이크가 세워진 것이 보였다. 존은 긴장해서 둘이 대화하는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데일리 에덴 출판사의 기자입니다. 취재여행중이지요.” 헨리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 손을 넣으려고 했다. 존은 화들짝 놀랐다. 남자는 총을 가지고 있다. 아까처럼 갑자기 쏠지도 모른다. 보안관에게 경고해야 한다. 그런 생각에 소리쳤다. “거짓말! 저 남자 총을 가지고 있어요! 커다란 거예요!” 보안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헨리의 움직임도 멈췄다. 헨리는 보안관에게 눈짓하고는 천천히 왼손을 품에서 뺐다. 빈손이었다. 보안관은 찡그린 얼굴 그대로 물었다. “진짜요?” “총이 있기는 합니다. 황야를 다니면서 총 한 두 자루 없이 어찌 다니겠습니까. 혹시 여기는 실탄은 금지인가요?” 헨리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실탄은 금지입니다. 여기 방호벽은 잘 작동하기도 하고,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바깥에 돌아다니는 놈들도 테이저로 충분합니다.” 보안관은 그렇게 말하고 악수를 풀더니 손을 내밀었다. 헨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품을 다시 더듬어서 총을 꺼냈다. 쏜다. 존은 순간 헨리가 총을 꺼내어 보안관을 쏘려는 순간 자신이 달려들어 총을 빼앗는 것을 상상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헨리는 총을 빙글 돌려 손잡이를 보안관 쪽으로 내밀었다. 존이 본 적도 없는 커다란 리볼버였다. “잘 부탁합니다.” 보안관은 그 총을 받아들더니 잠깐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약간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례지만….” 헨리는 입술을 실룩이더니 양 팔을 들어올렸다. 보안관은 헨리의 소지품을 꼼꼼히 뒤지고, 바깥에 세워놓은 커다란 바이크에 실린 가방도 가져와서 꼼꼼히 뒤졌지만, 무기라고는 짧은 나이프 한 자루 뿐, 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존은 보안관이 그걸로 소지품 검사를 끝내려 하자 가까이 가서 귓속말로 말했다. “저 남자 트레일러도 있어요. 무진장 커요. 거기 뭔가 더 있을 거예요.” 보안관은 귀찮은 일을 시킨다는 얼굴로 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물어보기는 했다. “트레일러를 타고 오셨습니까?” “네, 마침 웰링턴에 가는 친구가 있어 중간까지 얻어탔지요. 내리고 나니 마침 이 친구가 안내를 해 주더군요.” 헨리의 대꾸에 존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거짓말이에요! 제가 저 사람이 시냇물가에서 내리는 거 봤어요! 거기서 총도 쐈어요!” “존, 어머니께서 거기 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니? 아무래도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야겠구나.” 존은 입을 다물었다. 보안관은 항상 쓸데없는 짓거리를 했다. 깃발 꽂기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도 팔에 물이 좀 튀었을 뿐인데 보안관이 괜히 엄마한테 말을 해서 한 달이나 외출을 금지당했었다. “설마 거기서 내리는 것도 금지입니까?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꼬마에게 쏘지 않았습니다. 막 내렸더니 독이 있어 보이는 도마뱀이 있더라구요. 제가 그런 놈들한테 좀 고생을 해서 말이죠.” “뭐, 그건 됐고. 일단 앉으시지요.” 보안관은 헨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존은 불만어린 얼굴로 보안관과 헨리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는 악당이고 총도 빼앗았는데 감옥에 잡아넣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었다. 힐끗 보안관 사무실 한쪽 감옥을 보자 거기에는 먼지 쌓인 상자가 가득했다. 악당을 집어넣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민트 여사가 오기 전에는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바닥의 깨진 병도 민트 여사가 올 때까지는 그냥 그대로 있을 것이다. 헨리가 먼지 쌓인 의자를 끌어다 앉자 보안관은 헨리의 총을 도장찍힌 종이로 꼼꼼히 봉인했다. 보안관은 총을 책상 옆에 있는 금고에 넣으면서 물었다. “총은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어떤 책을 쓰십니까?” 보안관의 질문에 헨리는 바닥에 깨진 병 조각을 턱짓하며 대꾸했다. “좋은 술이군요. 여기 위스키가 최고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런 책입니다.” 헨리는 책상위에 늘어놓았던 소지품 중에서 작은 책을 집어 내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껍고, 재미없어 보이는 책이었다. “호오. 여행기라…. 뭐, 읍내에 가면 위클리 에덴은 들어오더군요.” 보안관은 심드렁하게 몇 쪽 훑어보더니 다시 내밀었다. 헨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책을 받아들고는 물었다. “위스키는 어디 가면 살 수 있습니까?” “공장에 가면 바로 살 수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한 두 병씩은 안 판다고 하더군요. 뭐 도시의 큰 가게랑 대량구매 계약을 맺어서 그렇게 팔면 안 된다나 뭐라나. 쿠룸바네 식당이 마을 한 가운데 있는데, 거기서는 팔 겁니다. 바로 마실 게 아니면 이 녀석 네 가게에 가면 될 거요. 어이 존. 너희 술도 팔지? 안내 좀 해 주지 그래?” “싫어요.” 존은 자기 말이 너무 신경질부리는 아이같이 들려서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이게 다 헨리라는 남자 때문이다. 수상한 남자. 무언가 있다. 존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직감을 믿는 것은 당연해. 이성은 몇 천 년 밖에 되지 않은 거지만 직감은 몇 백만 년이나 된 물건이거든. 술도 오래된 것이 좋잖아? 알렉산드로스도 그렇게 말했다. 존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헨리를 노려보니 헨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것 참. 꽤 미움을 받는 모양인데. 큰일이네요. 여기도 이방인을 싫어하는 동네인가요?” 말과는 달리 전혀 큰일이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까의 유타랍토르가 지었던 표정과 겹쳐 보여 존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럴 리가요. 이런 고약한 꼬맹이나 그렇죠. 곧 열다섯인데.” “하긴, 꼬맹이들은 절 좀 무서워 하기는 하죠.” 헨리는 자기 얼굴의 흉터를 실룩이며 웃었다. 보안관도 따라 웃었다. “꼬맹이 아니에요!” 존은 소리치면서 보안관 사무실을 나왔다. 웃음소리가 따라오다가 곧 사라졌다. 수상해. 존은 스쿠터를 끌고 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총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총은 흔하다. 존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고 있지만, 엄마도 분명히 한두 자루는 가지고 있고, 열여덟인 마크는 이번에 총을 받았다. 누나마저도 핸드백에 총을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그 총은 분명히 달랐다. 흔한 테이저 건이 아니다. 분명히 실탄이 들어가 있는 주제에 소음기까지 달렸다. 그래 소음기가 달렸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존은 자기가 그걸 깨달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생각은 계속 되었다. 총소리를 숨겨야 하는 자는? 악당이다. 분명하다. 보안관은 당당하게 총을 차고 다니지 않는가. 얼굴만 봐도 악당 같아 보이지 않는가. 얼굴에 큰 상처는 틀림없이 비겁하게 싸움을 하다 생긴 것이다. “멍청이.” 존은 조그맣게 보안관을 욕했다. 민트 여사가 있었다면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악당은 감옥에 갇히고 존은 악당을 잡은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으리라. 마을 사람들은 존을 칭찬하고, 목사님도 예배 중에 존에게 칭찬의 말을 할 것이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어쩌면, 어쩌면 메리도…. “어머, 존? 놀러 갔다 오는 거야?” 메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메리!” 존은 허둥지둥 인사했다. “안녕.” “안녕.” 메리가 존의 인사에 답하고 메리 뒤에 서 있는 제임스도 인사했다. 제임스는 잘생긴 청년이었고, 메리의 오빠였다. 그리고 메리는… 메리였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는 갈색 피부 때문에 더 하얗게 보인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검은 머리. 그 위에 두건을 둘렀다. 그녀는 모자를 쓰지 않는다. 오늘처럼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을 정도로 약한 햇살에도 탈 것 같다면서 썬크림에 모자에 양산까지 온갖 난리 법석을 피우는 여자들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당당한 맨얼굴. 거기다 방금 수확한 파란 옥수수를 한 아름 들고 있었다. 정말 누나랑 같은 열 여덟살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누나라면 틀림없이 연약한 여자는 이런 걸 들면 안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면서 존에게 시키거나 남자친구를 불렀을 터였다. 여자들은 열셋만 되도 자기들끼리 쑥덕대며 꺄갸 하는 소리를 내고 괜히 어려운 책을 들고 다니기나 하고 남자를 부려먹을 생각만 해 대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졌다. 존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도와줄게요!” 존이 그렇게 말하며 메리가 든 옥수수 다발을 받아들어 스쿠터에 실었다. “어머. 신사구나. 고마워. 마침 스미스 부인에게 이걸 가져다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계실까?” 메리는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했다. 활기찬 음성. 존은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엄마….” 거기까지 말했다가 존은 급히 말을 고쳤다. “어머니는 마가렛 아주머니네에 가셨는데 지금쯤 돌아오셨을 거예요. 톰 아저씨가 물건 가지고 올 시간이거든요.” 메리는 작게 웃었지만, 존에게는 그 웃음이 천둥보다 크게 들렸다. 귀에 열이 확 올랐지만, 메리와 제임스는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놀러 갔다 오는 거니?” “냇물 근처는 가지 마. 요즘 거기 유타랍토르도 보인다더라.” 제임스가 후렴구를 붙이듯이 끼어들었다. “알아요. 거긴 이맘때면 디플로도쿠스들이 알을 낳으러 오니까. 디플로도쿠스를 따라서 작은 것들이 움직여서 그래요. 그걸 잡아먹으러 오는 거예요.” 존은 알은체를 했다. 유타랍토르를 만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카쟈라웜이 달린 것을 발견해서 그것과 동조하려다 실패한 이야기는 더욱 하지 않았다. “하긴, 토박이가 잘 알겠지. 우리야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멀쑥한데다가 너무 말에 잘 끼어들어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제임스는 존의 말을 잘 들어줘서 좋았다. 메리는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존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끝에는 말이 달라져버렸다. “괜히 카쟈라 같은 게 되려고 거기 가까이 가면 안 돼. 랍토르들은 작아도 위험하니까. 아니, 요즘 아이들은 토들러를 더 좋아하나? 존은 어때? 역시 공룡을 조련하는 것보다는 큰 로봇을 타는 게 좋아?” 존이 대답하기 전에 제임스가 또 끼어들었다. “우리가 살던 데서는 카쟈라가 더 인기였는데. 프테라노돈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최고였지.” “라이더 같은 건 겁쟁이에요. 알렉산드로스도 그랬어요.” 존은 괜히 뻐기는 투로 말했다. 메리는 하얀이가 드러나게 활짝 웃었다. 존도 따라 웃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말 멋있지. 나도 그 책은 전부 다 가지고 있단다.” “이번에 신간이 나왔대요! 톰 아저씨가 다음에 읍내 갈 때 가져다 주기로 했어요.” “어머 그럼 보고 빌려줄 수 있을까?” “물론이죠!” 존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막 무어라 더 떠들어대려고 할 때였다. “존!” 높고 커다랗고, 디플로도쿠스 수백 마리가 뛰어다니면서 내는 소리 속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니! 파는 물건까지 가지고 나가서는! 얌전히 가게 좀 보는 것도 못 하는 거니?” “아니, 엄마 그게 아니고.” 존은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카쟈라웜에 감염된 어린 유타랍토르를 발견해서, 천 에덴이나 하는 소세지를 가지고 그 유타랍토르를 꼬셔서는, 카쟈라가 되어 보려고 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거기다 그게 바로 시냇물가라고는 정말로 정말로 말할 수 없었다. 그 때 팔에 화상을 입고 보안관에게 업혀왔을 때도 무진장 두들겨 맞았다. 또 갔다는 걸 알았다가는 정말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공포가 존을 감쌌다. “얘는 정말.” 엄마는 무섭게 존을 노려보았지만, 손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메리와 제임스의 덕이었다. 하지만 메리 앞에서 이렇게 창피한 꼴을 보이느니 그냥 두들겨 맞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서 가게에 가 있어! 누나랑 마이크가 나가지도 못하고 있잖니!” 엄마는 존에게 무섭게 호통을 치고는 메리와 제임스를 향해 웃어보였다. “메리 씨. 제임스 씨. 항상 고마워요. 여전히 옥수수가 알이 굵네.” 존은 엄마가 화사하게 웃으며 메리와 제임스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역시 여자란 가식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스쿠터를 밀었다. 어쨌든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존! 메리랑 제임스 씨에게 인사도 안 할 거니!” 존은 최대한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 봐요.” “그래. 잘 가.” 메리는 친절하게도 동정한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역시 메리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존은 금방 가게 앞에 도착했다. 스미스네 잡화점이라고 적힌 간판이 삐걱거리면서 존을 맞았다. “뭐 하느라 이제 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누나가 표독스럽게 외친다. 극장이라도 갈 모양이었던 듯, 시허옇게 얼굴을 칠하고 모자까지 갖춰썼다. 메리와 대비되어 한층 더 못나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저 나이 때는 다 그렇잖아. 괜찮아 존.” 괜히 끼어들어 마음 넓은 척 하는 마이크는 더 마음에 안 들었다. 허여멀건 샌님 주제에 항상 어른인척 하며 잘난 소리만 해 댔다. “그런데 우린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가게를 좀 부탁해도 될까?” 마이크는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존은 어쩐지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속이 끓었다. 니가 뭔데 내가 우리 가게 보는 걸 부탁까지 하는거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누나가 먼저 소리를 쳤다. “당연히 되지! 지금까지 놀다 왔으니 저녁까지 네가 가게 봐! 가자!” 누나는 평소처럼 존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존은 퉁명스런 얼굴로 계산대에 높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그럼 존. 부탁할게. 나중에 봐.” 마이크는 잽싸게 누나의 가방을 들어주면서 말했다. 분명히 영화를 보고 나서도 또 누나를 데려다 주러 오겠지. 존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마이크를 쳐다봐 주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누나를 쳐다보느라 존 쪽은 보지도 않았다. 즐거워 보이는 둘을 보니 어쩐지 더 짜증이 솟구쳤다. “블러디 메리 제인.” 존은 조그맣게 요즘 유명한 여자 무법자의 이름을 말했다. 아마 그 여자도 누나보다 표독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뭐라고? 존. 방금 뭐라고 했어?” 누나가 나가려다가 소리쳤다. 화장한 얼굴이 이미 붉어졌다. 누나는 티라노사우르스처럼 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마이크가 말렸다. “영화 시간 다 되어가. 보고 싶었던 거잖아? 응?” 누나는 마이크가 말리자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으면서 가게를 나섰다. 하지만 나가면서 으름장을 놓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너 나중에 죽을 줄 알아.” 존은 혀를 내밀어 응수했다. 하지만 누나는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게 둘이 나가고 나서 존은 그냥 다리를 까닥이며 앉아 있었다. 손님은 거의 오지 않았다. 특히 이런 대낮 시간은 거의 다 밭에 일을 나가거나 할 시간이라 더욱 그랬다. 가만히 있으니 맹렬히 배가 고팠다. 다행히 계산대 안쪽 바구니에 파이가 있어서 그걸 먹었다. 평소라면 알렉산드로스가 나오는 소설이라도 읽었겠지만,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책을 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 파이 하나를 싹 비운 곧 존은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얘는 또 자고 있어. 세상에. 그걸 혼자 다 먹었네.” 언제 왔는지 엄마가 존을 깨웠다.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존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도시에서 기자양반이 왔더라. 물건을 이만큼이나 사가겠대. 녹색 담요 저거는 자리만 차지하고 팔리지도 않아서 걱정했는데 이제 다 팔렸다.” 엄마는 기분이 좋은지 존에게 한 장 가득 살 물건이 적힌 종이를 흔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하지만 존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 사람 이상한 사람이야. 악당일거야. 강도거나. 틀림없이 현상금이 걸려 있을걸? 보안관이 멍청해서 못 잡는 거야.” 엄마의 눈썹이 약간 찌푸려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니. 그리고 보안관 아저씨는 유능하고 좋은 분이잖아. 그야 좀 게으르긴 하지만 그건 민트 여사가 있으니까. 괜찮잖아. 왜 너 다쳤을 때도 보안관 아저씨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 사람 이상하단 말이야. 악당이라고.” 존이 즉시 대꾸하자 엄마의 목소리도 조금 더 올라갔다. “존,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막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이 뭐 악당 같거나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봤어?” 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했다간 또 시냇가에 갔다는 걸 알아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어디서?” 다시 엄마가 채근하자 존은 우물쭈물 말하고 말았다. “…거기 회초리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존의 머리에 불이 번쩍했다. 엄마가 손을 들어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너 엄마가 거기 가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이놈 자식이!” 존은 겁에 질려 머리를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어이구! 어이구! 이놈아! 내가 너 때문에 죽는다 죽어! 응? 팔 가지고는 부족해서? 응?” 엄마는 한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들어 존을 후려쳤다. 존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나갔다. “너 거기 안 서? 당장 안 오면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뒤에서 엄마의 호통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이게 다 그 악당 때문이야. 존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서러워서 나는 눈물을 닦았다. 조금 터덜터덜 걸으니까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들어가기는 해야 할 텐데, 들어가면 틀림없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어떡하지. 존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본격적으로 걱정했다. 그렇게 걱정하며 멍하니 길 끝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 근처의 상자 뒤로 숨었다. 헨리였다. 톰 아저씨랑 얘기하고 있었다. 톰 아저씨 뒤로는 커다란 트리세라톱스가 있었다. 이름은 잭. 거대한 뿔은 셋 모두 덮개가 씌워져 있었지만, 존은 그 때 잭이 메리네 밭 한가운데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한 방에 부숴버리는 것을 보았다. 제각각 회전하는 뿔은 한 방으로 바위를 가루로 만들었었다. 존은 그런 굉장한 녀석을 짐 부리는 데나 쓰다니 아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존이라면 잭을 타고서 모험을 할 것이다. 나쁜 악당들도 한 방에 잡고, 거대한 괴수도 잡으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저 악당을 잡으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엄마한테 혼나지도 않을 것이고, 도리어 칭찬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보안관은 저 악당에게 속아 마을을 활보하게 해 주었다. 지금 엄마가 내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들에게 내 말을 믿게 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존은 그렇게 생각하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분명히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악당들은 언제나 그랬다. 알렉산드로스도 숨죽이고 있다가 그 때를 노려 악당을 잡았다. 존은 헨리를 계속 노려보며 방법을 생각했다. 톰 아저씨는 헨리와 이야기가 끝났는지, 다시 짐수레에 올라탔다. 헨리는 인사를 하고 존이 있는 쪽으로 왔다. 존은 놀라 상자 뒤에 바싹 붙어서 몸을 숨겼다. 헨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음정도 엉망이고 가사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몇 가지 단어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총, 백만 에덴, 쏴, 쏴, 이런 단어가 반복되는 노래였다. 목사님이 들었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역시 악당이 부를 만한 노래였다. 존은 다행히 헨리가 자기를 못 보고 지나가자 고개를 빼꼼 내밀고 헨리가 가는 길을 쳐다보았다. 헨리는 마을 외곽으로 가고 있었다. 그 쪽에는 옥수수밭이 있다. 존은 조심스럽게 뒤를 쫒았다. 헨리는 몇 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았다. 존은 알렉산드로스가 된 기분에 계속 쫒아갔다. 유타랍토르를 탔으면 완벽했을 텐데. 존은 그렇게 생각하자 아침의 꼴사나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다음에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했다. 다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아까는 정말 무서웠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떻게 티라노사우르스와도 동조를 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헨리는 이제 마을을 벗어나서 옥수수밭이 있는 쪽으로 가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주 수상해 보였다. 존은 건너편 밭에 숨어서 그걸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분명히 무언가 악당 같은 행동을 할 터였다. 예를 들면 옥수수 대를 마구 꺾는다든가, 옥수수를 훔친다던가 하는 그런 일일 터였다. 그럼 그걸 보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말하면 된다. 존은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온 것에 감사하며 남자가 옥수수밭으로 들어가자 재빨리 길을 건내 그 뒤를 쫒았다. 헨리가 들어간 곳은 마침 메리와 제임스네 밭이었다. 메리라면 내 말을 믿어줄 거야. 그런 확신이 들었다. 헨리는 밭에 들어가자 빠르게 걸어서 존은 따라가기가 힘이 들었다. 거의 뛰다시피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푸드덕. 요란한 소리에 존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 있었는지 대왕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소리였다. 눈을 흘기며 다시 앞을 보는데 헨리가 없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때 뒤에서 옥수수 잎을 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끼쳤다. 뒤를 쫒는 걸들켰다. 그래서 나를 처리하러 오는 것이다. 악당들은 목격자를 살려두는 법이 없다.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존은 온 몸이 굳어서 뒤를 돌아보지도, 도망치지도 못했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깨에 손이 얹혔다. “악!” 존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메리가 의아한 얼굴로 존을 쳐다보았다. 옆에는 제임스도 있었다. 옥수수를 수확하던 중인 듯, 둘 다 낫도 가지고 있었다. 존은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악당이….” “악당?” 존은 정신없이 이야기를 했다. 트레일러를 타고 온 수상한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멍청한 보안관이 마을에 들인 이야기며 그런 것들을 모두 쏟아냈다. 이야기를 마친 존은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보안관은 물론이고, 누나도 엄마도 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직 증거가 없으니 틀림없이 그들도 그럴 것이다. 메리에게 시답잖은 소문이나 퍼트리고 다니는 꼬맹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하지만 메리의 반응은 존의 예상과 달랐다. “그 트레일러가 있었다는 데로 가 볼래?” 존은 고개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끄덕였다. 처음에는 셋이 함께 가려고 했지만, 제임스는 근처에서 헨리가 있는지 찾아본다고 해서 존과 메리만 가게 되었다. 존은 메리의 바이크 뒷자리에 타고 헨리를 처음 본 장소를 안내했다. 이야기를 들은 메리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저녁이 다 되어 가니까 빨리 가야겠어. 속도를 낼게. 꽉 잡아.” 그렇게 말한 메리는 의외로 바이크를 빨리 몰아서 존은 정말 꽉 매달려야 했다. 약간 땀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기분이었다. 그래서그런지 정말 순식간에 처음 헨리를 만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쇠은행나무에 올라가 보니 거기에 트레일러는 없었다. 실망한 존에게 메리는 대담한 제안을 했다. “건너가 볼까?” 사실 시냇물은 그리 넓지 않아서 뛰어넘으려면 뛰어 넘을 수도 있어 보였다. 저쪽에 가장 좁은 곳을 택한다면 일 미터 조금 넘을 것이다. 아까 유타랍토르도 가볍게 건너지 않았던가. 하지만 잘못하면 화상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존은 메리의 대담한 제안에 놀랐다. 그래서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메리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더니 존이 말릴 새도 없이 시냇물을 뛰어넘어버렸다.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그녀를 보며 존은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어떤건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최대한 대범하게 보이길 바라며 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장한 각오로 달렸다. “으악!” 하지만 결국 뛰면서 비명을 지르고, 건너편에서 볼썽사납게 뒹굴고 말았다. 회초리풀이 사정없이 존을 때려댔다. 마구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지만, 메리가 활짝 웃으며 칭찬해주자 존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말 여기 있었나 보네.” 메리는 땅에 살짝 남은 핏자국과 총알구멍을 보며 말했다. 회초리풀이 트레일러에 깔려 꺾인 부분도 꽤 많아 보였다. 존은 기뻤다. 메리는 역시 존을 믿어준 것이다. 존은 기뻐서 양 팔을 마구 휘저으며 메리에게 말했다. “그렇죠? 악당이에요. 분명히. 아니면 트레일러를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지? 역시 뭔가를 숨기는 건 악당이겠지.” 메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존도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트레일러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알렉산드로스처럼 뭔가 쓸 만한 걸 찾아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근처를 좀 더 뒤져보긴 했지만, 해가 지려고 해서 결국 둘은 별 소득 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메리가 의자 수리하는데 쓰려고 부러진 회초리풀 몇 자루를 주워온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수상한 사람이 마을을 돌아다닌다니 어쩐지 불안해.” 메리는 방호벽을 지나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조금 겁먹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해가 진 뒤라 회초리풀이 방호벽에서 나오는 저주파와 초고주파에 반응해 은은한 빛을 내서 예뻤다. 그 빛을 받은 메리는 더 예뻐 보였다. 존은 가슴을 쫙 펴며 호언장담했다. “걱정 말아요. 내가 지켜줄게요.” “든든한데.” 메리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존은 메리를 보며 마주 웃었다.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이제 곧 악당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좀은 그런 생각에 집에 돌아가면 엄마한테 혼날 거란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신이 난 걸음으로 메리와 제임스의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길이 꺾이는 곳에 커다란 트리세라톱스가 보였다. 잭이었다. “잭이네.” 메리가 잭을 알아보았다. 잭의 뒤에 짐마차도 매달려 있었는데, 톰은 보이지 않았다. “톰 아저씨는 어디 갔나…” 존과 메리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가는데 잭의 배 아래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왔다. “꺅!” 메리가 놀라 소리치며 손에 들고 있던 회초리풀을 휘둘렀다. 상대에게 맞지는 않았지만, 놀란 듯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으헉!” 쿵. 그 소리에 맞추든 잭이 펄쩍 뛰었다. 잭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톰. 놀랐잖아요. 괜찮아요?” 메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잭이 뿔을 살짝 돌리며 푸르릉거렸다. 어쩐지 메리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뿔에 덮은 보호대가 돌아가는 뿔에 쓸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내가 더 놀랐어. 아이구. 심장이야. 아이구. 아이구. 괜찮아. 잭. 괜찮아. 자, 뿔 멈추고. 착하지. 착하지.” 톰은 잭의 앞다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잭은 몇 번 더 푸르릉 거리더니 뿔을 멈추고 다시 얌전해졌다. “내가 놀라면 얘는 더 놀란단 말이야.” 톰이 약간 책망조로 말했다. 잭이 정말로 놀라서 난동을 피우거나 하면 사람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미안해요. 요즘 수상한 사람도 돌아다니고 해서….” 메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톰이 손을 내저었다. 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를 받았다. “됐어. 됐어. 뭐 여기서 나오면 놀라기도 하겠지. 잭 배에 진드기가 붙은 것 같아서 좀 찾아서 떼느라…” “톰 아저씨보다 잭이 더 놀란 것 같아요.” 존은 불쏙 그렇게 말했다. 사실 잭은 아직도 좀 놀란 얼굴이었다. 존이 트리세라톱스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래 보이지? 이 녀석들이 사람보다 더 민감하거든. 아다만디노사우리드가 이놈들처럼 덩치가 크고, 뿔도 막 돌아가고 해서 강해 보여도 감각이나 감수 역치가 낮아.” “그런데 왜 톰은 항상 어려운 말 써요? 아만다노?” 메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실 존도 그건 궁금했다. 톰은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아다만디노사우리드. 본래 공룡이란 건 아주 옛날에 구(舊)지구에 살던 동물이거든. 아다만디노사우리드와는 달라. 뿔도 돌아가지 않고 불을 뿜거나 하지도 않아. 크기도 좀 더 작지. 아버지한테 배웠어. 아버지는 그… 공부를 하시는 분이셨거든.” 존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공부는 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게 아닌가? 나이를 먹으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톰은 웃으며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메리가 말을 끊으며 인사를 했다. “재미없네요. 존, 난 먼저 들어갈게. 내일 그 일은 다시 얘기해 보자. 나중에 또 봐요. 톰.” 존은 메리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메리가 벌써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린 다음이라 뭐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기에 존은 계속 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카쟈라인데 왜 장사를 하는 거예요?” 존의 말투는 약간 따지는 것 같았지만, 톰은 별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카쟈라긴 해도 난 모험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그냥…. 여기저기 가 보고는 싶었지.” 존은 계속 물었다. “그럼 왜 잭을 길들였어요? 짐을 끌게 하려고?” 톰은 가볍게 웃었다. 약간 입꼬리가 내려가는 웃음이었다. “그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더니, 말을 덧붙였다. “일부러 잭을 길들인 건 아니란다.” 존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부러 길들인게 아니라구요? 먹이를 주고 그 사이에 카쟈라웜에 이마를 가져다 댄 게 아니에요?” 톰은 아까보다 좀 크게 웃었다. 잭도 어쩐지 웃는것 같은 얼굴로 존을 바라보았다. 톰이 물었다. “쿠룸바한테 들었지?”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의 쿠룸바가 직접 봤다며 말해줬던 내용이었다. “그 친구는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해서 탈이야.” 톰은 어깨를 으쓱하며 잭과 눈을 맞추더니 잭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먹을 건 잭이 배고파 보여서 그랬던 거고, 이마를 맞댄 건 반가워서 그런 거지.” 존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동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거랑은 다르단다. 이건,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똑같아.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고 느끼는 거지.” 톰은 잭을 쓰다듬으며 계속 말했다. 잭은 행복해 보였다. “처음 보는 순간 알았어. 이 아이가 내가 느끼는 걸 느낀다는 걸. 아버지는 그걸 복잡하게 설명하는 걸 좋아하셨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뭔지는 잊지 말라고 하셨단다. 중요한 건 우리는 서로 처음 볼 때는 겁을 먹었다가, 좀 알게 되면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지. 아다만디노사우리드가 겁이 많다고 말했지? 잭이 날 보고 겁을 먹고 있고, 나도 잭을 보고 겁을 먹어서 서로 좀 떨고 있다가 곰곰 생각하니 떨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래서 친해지게 된 거야.” 톰은 그렇게 말하며 잭과 마주보고 웃었다. “우리는 서로 느끼는 걸 알 수 있단다. 존, 너도 엄마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있잖니?”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기 있는 것이고. 존은 속으로 그렇게 대꾸했다. 톰은 계속 말했다. “카쟈라가 된다는 건 그런 거야. 이 아이가 네 가족이 된다는 거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커다란 기계가 하나 더 생기는 거랑은 많이 달라.” 존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카쟈라가 되려면 굳이 이마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아침에 유타랍토르는 왜 나랑 친해지지 않았던 거지? 존은 혼란스러웠다. “내가 힘들어 하면 이 아이는 더 힘들고 내가 무서워 하면 이 아이는 더 무서워 해. 그래서 나는 안전한 생활을 하려고 하지.” 존은 불쑥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건 아저씨가 더 용감해지면 되는 거 아니에요?” 톰은 곤란한 듯 웃었다. 존은 무어라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톰도 곤란한 듯 웃고 있다가 갑자기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주머니를 뒤져 책을 꺼냈다. “이번에 신간을 가져왔는데. 깜빡했구나. 엄마 걱정하신다. 어서 들어가 봐.” 알렉산드로스와 디플로도쿠스. 존은 그 책을 받아들고 감사 인사를 했다. 톰 아저씨는 어쩐지 좀 쓸쓸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잭과 함께 쿠룸바네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존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지만, 창문으로 불이 새어나오는 걸 보니 엄마는 아직 가게에 있는 것 같았다. 존은 문 앞을 서성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 아래 퍼질러 앉았다. 한숨을 내쉬고는 결국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엄마가 가게 문을 닫을 때 일어나서 용서를 빌면 좀 덜 맞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이번 이야기도 알렉산드로스가 악당들을 때려잡는 이야기였다. 은행강도들이 교묘하게 디플로도쿠스의 산란장 근처에 금괴를 숨겨놓았다. 디플로도쿠스는 알을 품을 때는 절대 둥지를 떠나지 않으므로 디플로도쿠스의 꼬리가 닿지 않는 곳에다 두면 안전한데 다른 사람들은 산란기라 흉폭해진 디플로도쿠스 때문에 거기 숨겨놓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다는 곳까지 읽다가 책을 덮었다. 배가 고파서였다. 들어가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무서웠다. 존은 멍하니 책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로스와 디플로도쿠스. 저자, 귄터 하힌리히.” 존은 별 생각 없이 겉장을 읽었다. 그러자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런 시답잖은 책 같은 걸 보느니 공부를 하는 게 나을 거다.” 존은 놀라 일어섰다. 그 남자, 헨리가 어느 샌가 뒤에 쭈그리고 앉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짓말만 쓰여 있는 책을 보다간 바보가 돼. 어머니 말씀대로 착실하게 공부하고 도시에 가서 대학에 다니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 존은 아무 말 없이 헨리를 쏘아보았다. 헨리의 눈에 실룩대는 흉터가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고 그냥 쏘아보았다. 헨리는 쭈그려 앉은 채로 말했다. “모험가는 제대로 된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야. 톰 아저씨를 보렴. 얼마나 건실하니. 덕분에 잭도 편안하고. 알렉산드로스처럼 살면 어머니가 슬퍼하신다.” 존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알렉산드로스의 대사였다. “남자는 꿈을 품고 살지 않으면 썩어버려요! 그런 남자는 주위도 같이 썩게 만든다구요!” “애 같은 소리 하기는.” 헨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비웃었다. 그러더니 존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멀어지며 존의 속을 긁는 소리를 했다. “무서운 걸 안 무섭다고만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못 해. 무서워도 할 건 해야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거라든가.” 존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소리쳤다. “악당!” 헨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멀어져갔다. 존은 기분이 나빠졌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주먹질을 해 보이고는 다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데 헨리가 멀어진 쪽에서 메리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어머 존. 늦었는데 안 들어가고 있는 거니?” 존은 엄마한테 혼날까봐 못 들어가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잘난 체 하며 말했다. “악당을 감시해야죠. 방금 여기 있길래 쫓아냈어요.” “든든하구나.” 메리가 옆으로 오며 말했다. 어쩐지 달콤한 냄새가 났다. 옥수수술 냄새 같기도 하고 고기 파이 냄새 같기도 한,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였다. “마을을 지키는 용감한 사나이에게 보상을 해 줘야겠어. 배고프지?” 메르는 그렇게 말하며 바구니를 내밀었다. 바구니 안에는 삶은달걀과 샌드위치, 우유가 들어 있었다. “우와! 고마워요!” 존은 반색하며 순식간에 바구니를 비워버렸다. 만족스런 기분으로 마지막 삶은 달걀을 먹던 존은 느닷없이 깨달았다. “디플로도쿠스!” 존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메리는 이해를 못 한 얼굴로 존을 쳐다보았다. “디플로도쿠스는 산란기에 사나워요. 하지만 자기 둥지만 철저히 지키니까 도리어 산란장 근처가 더 안전할 수 있어요. 분명히 거기 숨겨놨을 거예요. 처음 발견한 곳도 그 근처잖아요?” 존은 들떠서 설명했다. 메리는 감탄스러운 얼굴로 존을 바라보았다. “굉장하구나. 역시 존은 믿음직스러워.” 존은 잘난척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웃음이 배어나오는 걸 감추지는 못했다. 메리는 경쾌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지금 찾으러 가 볼까?” “지금요?” 존은 놀라 되물었다. 메리는 당연하다는 투였다. “지금이 좋잖아? 어두워서 들킬 염려도 적고. 그 악당도 방금 쿠룸바네 식당쪽으로 가는 걸 봤으니까 안전해.” 사실 랍토르들은 밤눈이 어두워서 밤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존은 확실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존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쿠터 열쇠를 꺼냈다. 디플로도쿠스가 사는 숲까지 오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디플로도쿠스가 다닌 곳은 자연스레 땅이 다져지고 평평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숲 속으로 들어와서는 스쿠터를 타기 곤란했다. 우기라 여기저기서 회초리풀이 솟아나기도 하고, 손바닥풀이나 돌버섯이 자라났기 때문에 그들은 내려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존은 몽둥이로 쓸 만한 굵은 회초리풀을 한 자루 주워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숲 안으로 와서는 둘 다 긴장해서 말이 없었다. 달은 다행히 밝았지만, 숲속이라 아무래도 어두워서 나아가는 속도는 느렸다. 중간쯤 왔을 때, 작은 키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오십 센티쯤 되어 보이는 콤프소그나투스가 두 마리 있었다. 존은 망설이지 않고 메리의 앞을 막아섰다. 뒤에서 작은 비명이 들렸다. “꺅!” “에잇!” 존은 그 소리에 호응하듯 콤프소그나투스를 걷어찼다. 다른 놈이 덤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지만, 몽둥이를 들고서 한 걸음 가까이 가니까 다행히 도망가버렸다. 존은 정말 멋져 보여서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까짓 것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얘기했다. 하지만 사실 발이 좀 아팠다. “괜찮아요?” “고, 고마워.” 그녀는 놀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역시 아무리 당차도 여자는 여자다. 내가 지켜줘야 한다. 존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을 쫙 펴고 말했다. “꼭 붙어 있어요. 위험하니까.” “응. 그럴게. 지켜주는 거네.” 존은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까이에서 디플로도쿠스가 길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메리가 약간 불안한 듯 물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디플로도쿠스한테 우리는 너무 작아서 신경도 안 쓸 걸요. 가까이 가지 않으면 트레일러를 찾을 수가 없잖아요.” 존은 어깨를 쫙 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둥지 바로 앞까지 가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가? 그렇겠지? 저렇게나 큰데.” 메리가 대답하며 위를 쳐다보았다. 이제 꽤나 가까이 왔는지, 디플로도쿠스 머리 몇 개가 숲 위로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나무 끝 새순을 밤참으로 먹는 듯 했다. 달빛 아래라 한 마리 한마리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검은 숲 위로 삐져나온 길다란 목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멋지지 않아? 탈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야. 그렇지?” 메리는 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존도 디플로도쿠스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가니 정말 까마득한 높이에 머리가 있었다. 저런 걸 탈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존도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침의 유타랍토르가 계속 생각났다. “어머 이럴 때가 아니지.” 메리가 정신을 차리고 존을 재촉했다. 존도 정신을 차리고 급히 걸음을 옮겼다. 숲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공터였다. 눈 닿는 곳에는 모두 디플로도쿠스였다. 디플로도쿠스 수십마리가 바닥에 엎드려 알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존과 메리가 찾던 트레일러도 있었다. 마치 작은 디플로도쿠스처럼 둥지와 둥지 사이에 자리잡고 웅크린 트레일러를 보는 순간 존이 기뻐서 소리쳤다. “찾았다!” 디플로도쿠스 몇 마리가 움찔하는 걸 보고 존은 자기 입을 틀어막았지만, 곧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엎드렸다. 존은 메리도 당연히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옆을 돌아보는데 메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녀는 트레일러 옆에 그려진 G.H 라는 머릿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존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녀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어이. 무슨 일이야?” 어느 샌가 헨리가 그들 뒤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을 미행했으리라. 존은 몽둥이를 고쳐잡고 메리 앞으로 나섰다. 헨리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존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꼴 좋다. 이 악당! 우리가 여기 트레일러를 숨겨놓은 걸 민트 여사에게 말할거야! 그럼 넌 감옥에 갈 거라고!” 헨리는 처음에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한 척 했다. 하지만 곧 놀란 얼굴로 존에게 달려들었다. 존은 손에 든 몽둥이에 힘을 주고 달려드는 헨리를 후려치려고 했다. 그 때 존의 머리에 무언가 와 닿았다. 동시에 헨리의 발이 멈췄다. 철컥. 금속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머리뼈를 통해 들리고, 메리가 말했다. “움직이지마. 이건 방아쇠가 가볍거든. 무슨 말인지는 알지? 공이도 당겨뒀어.” 존은 메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데, 누군가 목을 감으며 머리에 딱딱한 것을 내리눌렀다. 아팠다. 메리가 소리쳤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자기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지. 멍하니 헨리를 쳐다보니 헨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두 손을 든 채였다. 헨리는 존의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했다. “어이 꼬마야. 저 여자는 블러디 메리 제인이야. 들어는 봤지? 이제 곧 서른이 되는 아줌마지.” 존의 머리에서 종이 울렸다. 방망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른. 그 말이 존의 머리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동시에 정신이 들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렸다. 바로 옆에서 탕.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면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더글러스 선생.” 메리가 이를 갈며 말했다. 헨리는 자신을 향한 총구와 바닥에 패인 자국을 번갈아 보면서 이죽댔다. “나이를 먹더니 이제 손이 떨리나보군. 이 거리에서도 못 맞추는 건가? 하긴 이제 서른이니까.” 메리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헨리도 망설이지 않았다. 말이 끝나자 마자 헨리가 자세를 낮추고 달려든 것이다. 첫 발이 빗나가고, 두 번째 총알이 나갈 때는 이미 헨리가 메리의 팔을 잡아 위로 올린 뒤였다. 헨리는 너무 쉽게 메리에게서 총을 빼앗고 존을 한 쪽으로 밀어내었다. “자, 그럼•••.” 헨리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존은 놀라 그 쪽으로 달려가려다가 목에 무언가 따끔한게 와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온 몸이 마구 떨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정신을 잃었다. 존이 정신을 차린 것은 팔이 아파서였다. 이미 해는 떠올랐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아래에 메리와 제임스가 보였다. 그들은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존은 위를 쳐다보았다. 존과 헨리는 지금 등을 대고 함께 묶인 상태였다. 거기다 쇠은행나무 가지에 매달려서 이 미터 정도 공중에 있었다. 존은 지금 묶여있는 것 말고도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주위를 둘러보느라 몸이 흔들리자 줄에서 소리가 났다. 그걸 듣고 메리와 제임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등 뒤에서 헨리가 깨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메리가 존을 보며 손을 들어보였다. 그 손에는 파란 액체가 발려져 있었다. “이거 보여? 파란 옥수수로 만든 약이지. 블루 머스킷이랑 불개미도마뱀을 잘 섞으면 이렇게 돼.” 존은 그 말을 듣고 지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디플로도쿠스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얌전히. 오십 미터는 될 그 거체가 아기 고양이처럼 얌전히 엎드려서 메리가 쓰다듬는대로 몸을 맡겼다. 존은 바닥을 쳐다보았다. 바로 아래의 땅이 불룩불룩 튀어나오고 거기에 풀이나 마른 가지가 잔뜩 있었다. 틀림없이 그 아래에는 디플로도쿠스의 둥지가 있을 터였다. 알을 품고 있는 디플로도쿠스가 저렇게 얌전할 리가 없다. “파란 옥수수는 여기밖에 자라질 않으니까. 이만큼 모으느라 힘들었어.” 그녀는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존에게 말했다. 존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심정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헨리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챵 연구소에서 훔친 혼합식이겠지. 설마 불개미도마뱀을 풀어놓고 키우는 건가? 그게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는 알고 있어?” “그래서, 더글러스 선생. 거기서는 우리 몸값으로 얼마를 주기로 했어?” 존은 망설이지 않고 나온 대답에 확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정말 악당이었다. “천만 에덴.” “멋진데. 다섯 배나 올랐어. 역시 돈 많은 데는 씀씀이가 커.” 헨리의 대답에 제임스가 즐거운 듯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어쩌면 더 오를지도 모르지.” 메리가 응수하며 옆에 놓아둔 바구니에서 무언가 꺼냈다. 은색 원반 같아 보였는데, 끝에는 오십 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침이 달려 있었다. 카쟈라웜이다. 존은 그게 뭔지 금방 알 수 있었지만, 그게 왜 여기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존?” 메리는 카쟈라웜을 보면서 존을 불렀다. 존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별 신경쓰지 않고 설명했다. “다 자란 공룡에 카쟈라웜을 감염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존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걸 궁금해 한 적은 없었다. 카쟈라웜은 알 껍질을 까고 들어가 기생하는 거니까 알을 까고 나올 때 이미 감염되어 있다. 메리는 즐거운 얼굴로 디플로도쿠스의 머리에 카쟈라웜을 얹었다. 작은 베레모처럼 덮인 것이 조금 귀여워 보였다. “모르면 가르쳐 드리죠. 이렇게 됩니다.”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며 언제 꺼냈는지 모를 작은 기계상자를 조작했다. 그러자 카쟈라웜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사방에서 촉수가 뻗어나오며 디플로도쿠스의 머리를 붙들더니, 조여들었다. 카쟈라웜이 좀 떨린다는 느낌이 나더니 딱딱한 것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맹렬하게. 존은 그게 카쟈라웜이 디플로도쿠스의 머리뼈를 파고드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 악당이었다. 디플로도쿠스가 깨어나 울부짖는다. 쾅. 꼬리가 바닥을 치고 땅이 울린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존은 소리쳤다. 묶여 있는데도 온 몸이 떨렸다. 메리가 비웃음 같은 걸 짓고서는 무언가 말했지만 디플로도쿠스의 비명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쟈라웜은 순식간에 디플로도쿠스의 머리 전체를 덮었다. 번들거리는 은색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멈추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똑바로. 쾅. 아니 좀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피가 튀었다. 존의 몸에도 온통 피가 튀었다. 바닥의 둥지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깨진 알껍질이 삐죽거리며 땅 위로 튀어오르고, 질척한 것들이 바닥을 적셨다. 그 위에 붉은 색이 디플로도쿠스의 입가로 흘러내렸다. 허옇게 돌아간 눈이 존을 바라보았다. 히익. 존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주 짧은 순간, 검은자위가 잠깐 보였다가, 다시 흰색으로 바뀌었다. 머리와 반대쪽에 있는 꼬리가 하늘로 솟았다. 꼬리 끝에 달린 돌기 수십 개가 제멋대로 돌면서 무지막지한 소리를 냈다. 쾅. 쾅. 쾅. 디플로도쿠스는 몇 번이나 꼬리를 바닥에 내리쳤다. 칼날 같은 소리의 끝에서 공기가 터져 나갔다. 바닥이 패이고, 돌과 흙이 날아올랐다. “그만해!” 존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존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디플로도쿠스의 비명과, 꼬리가 바닥에 부딪는 소리, 돌기가 회전하는 소리가 존의 작은 목소리는 따위는 모두 집어삼켰다. 다시 머리가 위로 솟구쳤다. 높이, 아주 높이. 해를 가릴 정도로 높이 올라간 채로, 디플로도쿠스는 멈췄다. 비명도 멈췄다. 존은 그 디플로도쿠스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는 그대로 해를 보며 높이 솟은 채였다. 부자연스런 동작, 디플로도쿠스는 보통 저렇게 높이 머리를 쳐들지 않는다. 존은 메리 쪽을 쳐다보았다. 메리는 황홀한 표정으로 디플로도쿠스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손을 위로 뻗었다. 손등을 위로 한 채로. 마치 누나가 새침을 떨며 남자친구에게 손을 내밀 때처럼, 그런 모습이었다. 그 손짓에 맞추어, 디플로도쿠스가 천천히 목을 내렸다. 기름칠 안 된 재봉틀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존은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현실 같아 보이지 않았다. 디플로도쿠스의 머리는 전체가 은색이 된 상태였고,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은색 머리에 메리가 손을 얹었다. 번들거리는 그 은빛에 메리가 비쳐 보였다. 메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황홀한 표정으로 볼을 부볐다. “멋지지 않아? 탈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야. 그렇지?” 메리는 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이제 슬슬 가자. 괜히 시간 끌 필요 없잖아?” 제이슨이 메리를 재촉했다. 메리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플로도쿠스의 목에 올라탔다. 날렵하고 가벼운 동작이었다. “도망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 것 같나? 죄만 늘어날 텐데.” 헨리의 말에 메리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멍청하긴. 도망을 왜 가? 간신히 여기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 정착해야지. 우리도. 옥수수도 잘 자라고. 도마뱀도 잘 자라고.” 제임스는 언제나처럼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헨리는 소리쳤다. “나는 이방인이라 쳐도 이 아이는? 너희가 제일 처음 의심받을 텐데?” 존은 자기가 화제에 오르자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그는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괜찮아. 곧 아이 하나 둘 없어지는 데는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마을이 바빠질 테니까. 그 와중에 이방인 악당이 아이 하나 죽인 거지.” 제임스는 가볍게 말하며 디플로도쿠스에게 재갈을 물리고 그 끈을 메리에게 건네었다. 그러고는 아까 조작하던 기계 상자를 디플로도쿠스의 목 돌기에 매달았다. 장전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그 장치가 우산 같은 모양으로 넓게 퍼졌다. “그럼, 바이바이.” 메리는 언제나처럼 가볍게 인사하고, 디플로도쿠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뿌오오오. 메리가 탄 디플로도쿠스의 머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그만큼 높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디플로도쿠스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놀란 표정. 디플로도쿠스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이라면 분명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아주 끔찍한 소식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리라. 존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순간, 디플로도쿠스들이 달렸다. 땅이 흔들렸다. 비유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땅이 흔들렸다. 메리가 탄 디플로도쿠스가 길다란 몸을 돌리자마자 헨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존이 지금까지 그 남자를 보면서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던 가장 다급한 목소리였다. “마을이다!” 존은 아직도 멍한 머리로 그 말을 이해하려고 해 봤다. 마을. 저 쪽에는 마을이 있었다. 그래서 메리가 지금 뭘 하려고 한다는 거지? “디플로도쿠스 떼를 폭주시켜서 마을을 박살내려는 거야.” 헨리의 목소리가 묘하게 조용하게 들렸다. 존은 고개를 돌려보려 했지만, 시야에 헨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힘을 주어 몸을 돌리려 해도 결국 두 명의 몸이 같이 돌아갔다. “어이. 꼬마.” “꼬마 아니에요!” 존이 반사적으로 소리지르자 헨리는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 상황에 그게 문제냐.” 헨리의 말이 맞았다. 분명히 그게 문제가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문제는 문제였다. 존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헨리는 계속 말했다. “내 윗도리 주머니에 칼이 있어.” “내 손도 묶여 있는데 어떻게 꺼내요.” “입으로 물든지 어떻게든.” 존은 온힘을 다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둘 다 허공에서 빙빙 돌 뿐, 입이 남자의 윗도리에 닿지는 않았다. “이제 늦었나.” 헨리가 대답처럼 그렇게 말했다. 존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직 특별히 문제가 생길 녀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존과 헨리가 묶인 곳 바로 아래에 피처럼 붉은 도마뱀 한 머리가 있었다. “벌써 한 놈 왔군.” 헨리가 체념한 듯 말하자 존은 어이가 없었다. 발로 걷어찰 필요도 없어 보이는 작은 녀석을 두고 현상금 사냥꾼이나 되는 작자가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작은 놈이잖아요.” “저놈이 제일 무서운 놈이야.” 존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불개미 도마뱀이라고 하지. 아까 말했지? 그 마약 재료로 쓰이는 놈인데 일단 피맛을 보면…” 헨리의 말에 호응하듯 그 놈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입 안에 촘촘한 이빨이 어쩐지 섬뜩했다. 존은 묶인 상태가 아니었다면 넘어졌을 것이다. 멀리에서 꾸물꾸물 소리가 났다. “이놈들은 피흘리는 놈만 공격해. 거기다 먹을 수 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동료를 부르지. 아주 귀찮은 놈들이야. 자기들도 상처난 놈은 먹어치우지.” 헨리가 설명하는 사이 사방에 융단처럼 붉은 도마뱀이 깔렸다. 존이 되물었다. “그럼 상처만 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안 날 수가 있을까.” 존이 고개를 들자 작은 랍토르들이나 콤프소그나투스, 같은 것들이 랍토르들이 대여섯 마리 섞여서 무리에서 벗어난 도마뱀이 있다 싶으면 앞발로 솜씨 좋게 잡아 올렸다. 그 사이에 작은 유타랍토르가 있었다. 이마에 있는 은색 원반이 어쩐지 익숙했다. 존은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알아보는 순간 이후에 무얼 해야 할지도 알았다. 녀석이 존을 쳐다보았다. 존은 발을 꼼지락거려 신발을 벗어 발로 던졌다. 신발은 유타랍토르한테까지 가 닿지는 않았지만, 다른 랍토르들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어이 뭐 하는 거야!” 헨리가 소리쳤다. 존은 대꾸하지 않고 나머지 한 켤레도 벗어 있는 힘껏 발을 휘저었다.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유타랍토르의 몸에 신발이 맞았다. 유타랍토르의 깃털이 곤두섰다. 됐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타랍토르가 소리를 질렀다. 주위의 다른 랍토르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빨간 도마뱀들도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존의 심장이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기름칠을 안 한 기계를 억지로 돌리는 것 같았다. 헨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어이 뭐 하는 거냐니까! 죽고 싶어?” 존은 여전히 헨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유타랍토르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여기다. 나 알지?” 존은 유타랍토르를 노려보았다. 확실한 계획이다. 저 놈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머리를 노리고 뛰어들 것이다. 보통 오 미터는 뛸 수 있다고 했다. 다리 길이는 일 미터 남짓. 그 정도 거리면 할 만 하다. 유타랍토르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하다. 발톱이 닿기 전에 나를 기억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다. 존은 그렇게 되뇌며 유타랍토르를 계속 노려보았다.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무서운 것은 나만이 아니다. 유타랍토르도 똑같이 무섭다. 그러니까 괜찮다. 둘 다 서로가 무서우니까, 괜찮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금씩 덜 무서워지고, 그 다음에는 친해질 수 있다. 이제 둘 다 무섭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지금 난 정말 무섭다. 존은 그런 생각을 하며 유타랍토르를 노려보았다. 뇌파란 것이 소리처럼 그 쪽을 향해 질러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사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끄르륵. 유타랍토르는 약간 높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매달린 존과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 “어, 어이!” 헨리가 소리지르고 마구 몸을 흔들었지만, 존은 계속해 유타랍토르를 노려보았다. 유타랍토르는 고개를 갸웃 하더니 달려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제 뛴다. 팍. 땅을 박차는 순간, 존은 휘파람을 쏘아 보내는 것처럼 유타랍토르와 눈을 맞췄다. 유타랍토르의 눈에 비친 존의 얼굴이 보였다. 내 얼굴. 입을 헤벌리고 있구나. 존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분명히 웃을 만한 시간이 없는데도 확실히 웃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순간에, 시간이 다시 흘렀다. 팍. 존의 눈앞에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달려들었다. 유타랍토르의 엉덩이가 존의 얼굴을 깔아뭉개고, 비비고, 떨어져나갔다. “부악! 퉤퉤퉤! 비켜!” 존은 허공에서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얼굴에 묻은 게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 존은 분명히 고약한 것들이 묻었다고 생각했다. 입에 들어간 것도 있었다. 헨리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뭐, 뭘 한거냐?” 존은 그 말을 듣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유타랍토르는 존을 올려다 보는 중이었다. 눈도 하나 움직이지 않고, 얼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존은 알 수 있었다. 유타랍토르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표정을 짓고서 존을 바라보았다. “으하. 으하하하하.” 존은 마구 웃었다. 헨리가 빨리 줄을 풀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도마뱀들이 기어올라와서 깨물때까지 웃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풀려난 헨리는 불개미도마뱀을 발로 마구 걷어차 길을 뚫었다. 한 놈이 상처가 나자 서로 그 놈들에게 달려들어 잡아먹고 싸우느라 헨리와 존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좋아. 내 아다만토들러를 보여주지. 이놈만 있으면 걱정 없어.” 헨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트레일러의 문 앞에 섰다. 삑. 높은 소리가 들리며 문이 덜컥. 하고 움직였다. “어라?” 헨리는 당황한 듯 다시 버튼을 눌렀다. “설마 안 열리는 거예요?” “아니, 그게….” 헨리는 당황해서 다시 몇 번이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짧고 높은 삑 소리만 나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트레일러의 냄새를 맡고 있던 유타랍토르가 킁킁대는 소리를 냈다. 존이 고개를 돌려 벽을 쳐다보았다. 문이 있는 쪽에서 옆 벽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로 움푹 패인 상태였다. 디플로도쿠스 떼가 지나가면서 부서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헨리도 그걸 보았다. 존은 아무 말 없이 유타랍토르에 올라타면서 스쿠터 열쇠를 내밀었다. 존과 헨리는 디플로도쿠스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마을이 멀리 보이는 지점까지 와서였다. 존은 달리면서 헨리를 소리쳐 불렀다. “아저씨! 쟤들을 진정시킬 수 있어요?” “진정하고 말 것도 없어! 저기 저 은색 머리 놈 목에 달린 거! 저게 뇌파 증폭기야! 메리 제인을 저놈한테서 떨어트려 놓기만 하면 돼!” 헨리도 소리쳐 대답했다. 디플로도쿠스 무리는 처음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리지는 않았지만, 발구름 소리는 여전히 무지막지했다. “우리가 위로 기어 올라갈게요! 이애는 작고 빠르니까, 충분히 기어오를 수 있어요. 저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우리가 이기는 거예요.” “그래. 유타랍토르를 그렇게 작은 총알 정도로는 막을 수 없겠지. 내가 엄호하지.” 헨리가 한 손에 총을 들고서 그렇게 말했다. 완벽한 계획이다. 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서로 웃으며 디플로도쿠스 무리로 달려들었다. 예상대로 메리가 탄 디플로도쿠스는 무리 제일 뒤에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어느 쪽으로 달려들지 서로 뻔히 알 수 있었다. 스쿠터가 왼쪽, 유타랍토르가 오른쪽으로 달려들었다. 꼬리만 피하면, 야생 디플로도쿠스는 공격 수단이 없다. 물론 그 꼬리는 십 미터가 넘는데다가 끝은 음속을 넘어서긴 하지만. 그들의 완벽한 계획에 허점은 없을 터였다. 꼬리를 반쯤 지나왔을 때, 메리는 그들을 발견했다. 꼬리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존과 유타랍토르는 한 몸으로 구르다시피 하면서 그 공격을 피했다. 머리 위로 섬뜩한 바람이 스쳤다. 디플로도쿠스의 발구름 소리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소리가 꼬리 채찍질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헨리는 한 손으로 바이크를 몰면서도 거대한 권총을 가뿐하게 다루었다. 물론 그 거리에서 디플로도쿠스 머리 위에 탄 메이나 제이슨을 맞추기는 힘들겠지만,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꼬리는 확실히 멈칫거렸고, 존과 유타랍토르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존은 꼬리가 닿는 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디플로도쿠스의 옆구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일단 등 위로 올라가면, 디플로도쿠스로서는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소구경 권총으로는 유타랍토르의 깃털을 뚫을 수 없다. 완벽한 계획이다. 존은 다시 그렇게 생각하면서 디플로도쿠스의 옆구리에 유타랍토르의 발톱을 박아 넣고 매달렸다. 이제 한 번 더 뛰어서 등으로 올라가면 끝이다. 유타랍토르와 존은 등 위로 뛰어올랐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무지막지한 디플로도쿠스의 발구름소리 사이로 새어든 묘한 소리가 그들을 붙들었다. 탕. 피융. 크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테지만 꼬리가 길어서 멀리서도 충분히 들리는 소리였다. 둘 다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존과 헨리는 동시에 말했다. “장거리 대물 라이플이다.” “민트 여사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상이 기울었다. 천천히. “피해!” 헨리가 외쳤다. 존은 아직 무슨 일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유타랍토르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유타랍토르가 존을 매달고서 뛰어내렸고, 둘은 간신히 쓰러지는 디플로도쿠스에 깔리지 않았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쓰러진 디플로도쿠스는 몇 번 움찔거렸지만, 곧 잠잠해졌고, 마구 날뛰던 다른 디플로도쿠스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얌전해져서는 느긋한 걸음으로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괜찮냐?” 헨리가 다가와 묻자 존은 대답도 하지 않고 머리 쪽으로 달렸다. 카쟈라가 쓰러지면 동조한 공룡도 쓰러진다. 디플로도쿠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은 메리가 당했다는 것이다. 머리 쪽으로 가자 메리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이 보였다. 어깨는 완전히 피투성이었고, 메리와 제임스 둘 다 디플로도쿠스의 목에 깔린 채였다. “메리!” 반사적으로 외치면서 가까이 가려다 존은 멈칫했다. 메리가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디플로도쿠스처럼 그냥 움찔거렸을 뿐, 다시 축 늘어졌다. 하지만 어깨가 미약하게나마 들썩이는 것을 보아 살아는 있었다. 헨리는 그걸 보고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저 거리에서 맞춘 거야? 거기다 살렸어?” “민트 여사는 명사수거든요.” 존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다 해결되었다. “민트? 설마 그 민트 여사가 오라이언 민트? 제 18기병대?” “그건 모르겠고, 민트 여사 이름은 오라이언이 맞아요.” 헨리는 존의 대답에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는 총집에 총을 집어넣으며 중얼댔다. “맙소사. 그런 여자가 보안관 보로 있으면 그냥 시골 동네가 아니잖아. 정말 급수탑 밑에 괴물이 잠들어있다고 해도 난 믿을 거야.” “애 같은 소리 하기는.” 존은 이죽댔다. 민트 여사가 있으면 일이 제대로 굴러간다. 역시 어머니 말씀이 맞았다. 어느 샌가 보안관이 차를 타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조수석에는 민트 여사도 있었다. 보안관은 헨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제나처럼 별 거 아니라는 말투였다. “어이. 헌터 양반. 미안하지만 현상금은 없어. 협조자 명목으로 위에 말은 좀 해 보지.” 헨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내 일이 다 이딴 식이긴 하지. 날 아셨구만. 거기다 오라이언 민트가 있는 동네일 줄이야.” 민트 여사는 차에서 내려 헨리를 쳐다보며 시거를 꺼내 물었다. 보안관이 재빨리 거기에 불을 붙였다. 민트 여사는 연기를 내뿜으며 대꾸했다. “나보다야 더글러스 헨리가 더 유명하지. 아니 귄터 하힌리히 쪽이 제일 유명하겠군.” “귄터 하힌리히?” 존은 민트 여사가 말한 이름에 놀라 헨리를 쳐다보았다. 헨리는 곤란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그 입술 위까지 내려온 흉터도 실룩였다. “알렉산드로스 시리즈? 아저씨가 그 작가란 말이에요?” 존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시답잖은 토들러지. 존. 이상한 사람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시지 않았니? 어머. 유타랍토르잖아. 어머니께 허락은 받은 거니?” 민트 여사가 허리에 손을 얹고 그렇게 말했다. 존은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높고 커다랗고, 디플로도쿠스 수백 마리가 뛰어다니면서 내는 소리 속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존!” 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유타랍토르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앞발로 가렸다. 엄마의 호통소리가 그 위를 때렸다.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니! 엄마가 위험한 데 가지 말라고 했지! 그건 또 뭐야! 내가 못 살아 정말!” “아니, 엄마 그게 아니고.” 존은 황급히 돌아보며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성과물 2010년 9월 중순 휴가중 읽은 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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