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2013-06-04소원 거기에는 카드가 있었다. 당연히. 카드를 뒤집었으니, 거기에 카드가 있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그 카드는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는 않았다. “이건 타로가 아니군요.” 나는 타로에 눈을 고정하고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이미 목이 잠겨 멀쩡한 척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었다. “타로가 맞아요.” “아니에요.” 나는 바로 대답했지만, 확신은 줄어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타로가 맞는가? 내 착각은 아닐까?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 혼자서 앞서나가가고, 원하지 않는 곳까지 달려나간 다음에, 결국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선택지 앞에서 정신이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죠?” 그녀는 내 불안을 등떠밀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목을 꽉 메우고 있는 것이 눈으로 쏟아질 것 같아서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죠?” 다시 질문이 내 목을 틀어쥐었다. 치약을 짜듯, 그 질문이 목을 틀어쥐고, 그 속에 있는 걸 짜냈다. “왜죠?” “알고 있잖아요?” 질문에 질문이 돌아왔다. 좋아하지는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맞는 말이니까. 이건 타로가 맞았다. 연인. 두 사람. 사랑. 어째서 나는 이게 타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자기 얼굴이 없었으니까.” 내게 그녀가 답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약간 둥근 얼굴. 삐딱한 웃음. 아. 하고 나는 뭔가 대답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걸 건네었다. “오래 걸렸네요.” “네” “다시 보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그녀가 웃으며 하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오래 걸렸다. 정말. 어찌 보면 몇년이나 걸린 것 같았다. 카드를 집어 뒤집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손이 차네요.” 나는 그 말 말고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 말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았다. 누군가 수도꼭지를 틀고 내 속이 부어넣은 것처럼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그 감정만 계속 차올랐다. “얼굴이 바뀌었네요.” 간신히 그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아까랑 얼굴이 달랐다. 어쩌면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어째서 이렇게 답답한 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 버린 것이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답답했던 거였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녀가 손 끝으로 카드를 집어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비웃음이라기엔 약간 어색하고, 따뜻하지 않은 웃음. 아, 그녀도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구나. “그게 중요한가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더 마주하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뭐가요?” 질문에 대답하지는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간신히 말 말을 끄집어 냈지만, 찾을 주머니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말을 하고 나서 알았다. “그렇네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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